2026-09-13 · 최지원 (수석연구원)

승자의 저주(Winner's Curse)란 무엇인가: 밸류 경쟁에서 이기고도 손해 보는 스타트업 투자·채용·광고 입찰 가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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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에서 이겼는데 왜 손해를 볼까요

결론부터 말하면 경쟁이 치열할수록 낙찰가는 실제 가치를 초과하는 쪽으로 기울기 때문입니다. 승자의 저주(Winner's Curse)는 여러 참여자가 같은 대상의 가치를 각자 추정해 입찰할 때, 가장 높게 추정한 사람이 이기는 구조에서 발생합니다. 2026년 상반기 국내 벤처투자는 8조 8,676억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54.3% 늘어 상반기 기준 역대 최대를 기록했고, 피투자기업당 평균 투자금액은 2024년 25억 4,000만 원에서 2026년 상반기 38억 6,000만 원까지 올랐습니다. 돈이 몰리고 딜 경쟁이 붙는 국면에서 이 편향은 투자자에게도, 높은 밸류로 자금을 받은 창업자에게도 청구서를 남깁니다.

목차

입찰에서 이긴 팀이 반년 뒤에 한 말

B2B SaaS를 하는 한 팀의 사례를 보겠습니다. 시리즈 A를 준비하면서 네 곳의 투자사가 관심을 보였고, 경쟁이 붙으면서 제시 밸류가 올라갔습니다. 최종적으로 가장 높은 조건을 제시한 곳과 계약했습니다. 창업자는 협상에서 이겼다고 생각했습니다.

반년 뒤 만났을 때 이야기가 달라져 있었습니다. 문제는 돈이 아니라 그 밸류에 붙은 기대치였습니다. 높은 밸류는 높은 성장 가정 위에 계산됩니다. 투자사는 그 가정을 근거로 보드 미팅에서 지표를 물었고, 팀은 분기마다 그 숫자를 설명해야 했습니다. 계획보다 두 분기 늦어지자 다음 라운드를 준비할 때 선택지가 좁아졌습니다. 같은 밸류를 유지하려면 지금 지표로는 부족하고, 낮추면 다운라운드가 됩니다.

창업자가 남긴 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때 20% 낮게 받았으면 지금 훨씬 편했을 겁니다." 이 문장이 승자의 저주의 창업자 버전입니다. 경쟁을 이겨 얻은 조건이, 나중에 비용으로 돌아오는 구조입니다.

승자의 저주는 어떻게 발견됐나

개념이 처음 정리된 곳은 학계가 아니라 석유 산업이었습니다. 1971년 애틀랜틱 리치필드의 엔지니어 세 명이 멕시코만 시추권 경매를 분석한 논문에서 이상한 패턴을 보고했습니다. 낙찰받은 회사들의 실제 수익률이 기대보다 체계적으로 낮았던 것입니다.

이유는 단순했습니다. 해당 구역의 매장량은 정해져 있지만 아무도 정확히 알지 못합니다. 각 회사는 지질 조사를 통해 추정치를 냅니다. 추정치는 실제 값 주위에 흩어지는데, 낙찰은 가장 높은 추정치를 낸 회사에게 돌아갑니다. 즉 가장 낙관적으로 틀린 회사가 이깁니다. 개별 추정이 편향되지 않았더라도 낙찰자의 추정만 떼어 놓고 보면 과대평가일 확률이 높습니다.

이 구조가 성립하는 조건은 두 가지입니다. 대상의 가치가 모두에게 대체로 같고(공통가치), 그 가치를 아무도 정확히 모른다는 것입니다. 스타트업 투자, 인재 채용, 광고 입찰, 기업 인수는 모두 이 두 조건을 만족합니다.

왜 이기는 쪽이 가장 크게 틀리나

추정치의 분산이 클수록 저주는 깊어집니다

참여자들의 추정치가 촘촘하게 모여 있으면 낙찰가와 실제 가치의 차이는 작습니다. 반대로 추정이 제각각일수록 최고값은 실제 값에서 멀어집니다. 정보가 부족한 영역일수록 저주가 커진다는 뜻입니다. 초기 단계 스타트업의 밸류에이션이 정확히 이런 영역입니다. 매출 배수로 계산할 근거가 얇고, 시장 규모 추정은 가정에 크게 의존합니다.

참여자가 늘수록 최고값은 올라갑니다

입찰자가 3명일 때와 10명일 때, 최고 추정치의 기댓값은 다릅니다. 사람이 많아질수록 극단값이 나올 확률이 높아집니다. 그래서 경쟁이 뜨거운 딜일수록 이겨서 얻는 조건은 나빠집니다. 딜에 사람이 몰린다는 사실 자체가 가격이 실제 가치를 넘어섰을 가능성을 알려 주는 신호이기도 합니다.

합리적 대응은 입찰가를 깎는 것입니다

경매 이론에서 제시하는 해법은 직관에 어긋납니다. 경쟁자가 많을수록 자기 추정치에서 더 크게 할인해 입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이겼다는 사실이 나머지 모두가 나보다 낮게 봤다는 정보를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정보를 미리 반영하지 않는 것이 실수의 본질입니다. 통제 착각이나 과신이 겹치면 할인 폭은 더 줄어듭니다.

스타트업에서 이 저주가 나타나는 네 곳

영역경쟁 구조저주의 형태
투자 라운드여러 VC가 같은 딜에 참여과도한 밸류로 진입, 회수 시 손실
인재 채용여러 회사가 같은 후보에 오퍼시장가 초과 보상, 기존 팀 형평성 붕괴
광고 입찰같은 키워드에 여러 광고주CAC가 LTV를 초과
인수합병복수 인수 후보 경쟁인수 프리미엄이 시너지를 초과

광고 입찰이 가장 자주, 가장 조용히 나타납니다

네 가지 중 실무에서 매일 벌어지는 것은 세 번째입니다. 검색 광고 경매에서 특정 키워드를 가져가는 쪽은 그 키워드의 가치를 가장 높게 평가한 광고주입니다. 문제는 전환율과 고객 생애가치가 추정값이라는 점입니다. 전환율을 낙관적으로 잡은 광고주가 입찰에서 이기고, 몇 달 뒤 CAC 회수 기간이 계획보다 길다는 사실을 확인합니다.

이 저주는 대시보드에 저주라는 이름으로 표시되지 않습니다. 그냥 CAC가 조금씩 오르고, 페이백 기간이 늘어난 것처럼 보입니다. 유닛 이코노믹스를 주기적으로 다시 계산하지 않으면 몇 분기가 지나서야 발견됩니다.

채용 경쟁의 숨은 비용

인재 확보 경쟁에서도 같은 일이 벌어집니다. 여러 회사가 붙은 후보를 데려오려면 시장가를 넘는 보상이 필요합니다. 여기서 끝나면 다행인데, 기존 구성원과의 보상 격차가 드러나면 조직 전체의 재조정 비용이 따라옵니다. 한 명을 이기고 열 명을 흔드는 구조입니다.

높은 밸류가 만드는 다음 라운드의 함정

창업자 관점에서 이 주제를 다시 보겠습니다. 2021~2022년 과열기에 높은 밸류로 자금을 조달한 팀들이 이후 몇 년간 겪은 일이 교과서적 사례입니다. 전 라운드보다 낮은 가격으로 자금을 받는 다운라운드 압박이 이어졌고, 이 비율은 2025년 4분기에 14% 아래로 내려오며 진정되는 흐름을 보였습니다.

그런데 지금 국면은 다시 조심할 구간입니다. 투자금이 특정 분야로 몰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2026년 상반기 AI를 필두로 한 ICT서비스 분야에 전체 투자금의 21%인 1조 8,600억 원이 투입됐고, 피투자기업당 평균 투자금액도 38억 6,000만 원까지 커졌습니다. 딜당 금액이 커진다는 것은 소수 기업에 자금이 집중된다는 뜻이고, 그 소수를 두고 경쟁이 붙는다는 뜻입니다.

높은 밸류의 청구서는 세 가지 형태로 옵니다.

  • 다음 라운드의 허들: 밸류를 유지하려면 그에 걸맞은 지표 성장이 필요합니다
  • 청산우선권의 무게: 조건이 붙은 조달일수록 회수 시 보통주 몫이 줄어듭니다
  • 의사결정의 경직: 높은 기대치는 실험보다 숫자 방어를 우선하게 만듭니다

밸류는 성적표가 아니라 앞으로 갚아야 할 약속에 가깝습니다. 이 감각을 가진 창업자와 아닌 창업자의 2년 뒤는 꽤 다릅니다.

투자자는 이 저주를 어떻게 관리하나

경험 많은 투자사일수록 경쟁 딜에서 물러서는 기준이 명확합니다. 실무에서 관찰되는 장치는 대체로 세 가지입니다.

투자심의의 역할 분리

딜을 발굴한 심사역이 그대로 최종 결정까지 끌고 가면 몰입이 판단을 밀어냅니다. 그래서 딜을 가져온 사람과 반대 논거를 만드는 사람을 분리하는 구조를 씁니다. 반대 논거를 담당하는 쪽에 "이 딜이 실패한다면 이유는 무엇인가"를 먼저 쓰게 하는 방식이 흔합니다. 매몰 비용이 쌓이기 전에 브레이크를 거는 설계입니다.

공동 투자로 분산하기

한 곳이 라운드 전체를 채우는 대신 여러 투자사가 나눠 들어가는 방식은 위험 분산이자 정보 검증입니다. 다른 투자사가 같은 값에 들어온다는 사실 자체가 추정치가 극단값이 아니라는 신호가 됩니다. 반대로 아무도 함께 들어오지 않으려 한다면, 그 자체가 재검토 사유입니다.

밸류보다 구조로 조정하기

가격을 낮추기 어려운 경쟁 상황에서는 조건으로 위험을 줄입니다. 성과 연동 트랜치, 전환 조건, 청산우선권 배수 같은 장치가 여기 해당합니다. 다만 이 방식은 창업자에게 부담을 넘기는 성격이 있어, 과도하면 다음 라운드에서 새 투자자가 들어오기 어려운 자본 구조를 만듭니다. 조건을 붙일수록 회사의 미래 조달 가능성이 좁아진다는 점은 양쪽 모두 계산에 넣어야 합니다.

한 가지 덧붙이면, 경쟁 국면에서 가장 위험한 문장은 "이번엔 다르다"입니다. 실제로 다른 경우도 있습니다. 기술 전환기에는 기존 배수가 무의미해지기도 합니다. 다만 그 판단의 근거가 시장 분위기인지 아니면 검증 가능한 데이터인지를 구분할 수 있어야 합니다. 분위기를 근거로 삼는 순간 그 판단은 다른 참여자들의 낙관과 같은 재료를 쓰게 되고, 결국 가장 낙관적인 쪽이 이기는 구조로 되돌아갑니다.

저주를 피하는 실전 4단계

1단계 — 입찰 전에 상한선을 글로 적습니다

투자든 채용이든 광고든, 경쟁이 시작되기 전에 지불 가능한 최대치를 문서로 남깁니다. 경쟁 중에 정하면 반드시 올라갑니다. 근거도 함께 적어야 합니다. 숫자만 적으면 나중에 근거 없이 조정하게 됩니다.

2단계 — 경쟁자 수를 보고 할인율을 정합니다

참여자가 많을수록 자기 추정치에서 더 많이 깎습니다. 실무적으로는 경쟁이 3곳 이하면 10% 내외, 5곳 이상이면 20% 이상 할인하는 식으로 규칙을 미리 정해 둡니다. 이 규칙이 있으면 뜨거운 딜에서 판단이 흔들리는 것을 막아 줍니다.

3단계 — 이겼을 때를 가정하고 되묻습니다

경매 이론이 알려 주는 가장 실용적인 질문입니다. "내가 이겼다면, 다른 모두는 왜 이 값에 안 왔을까?" 이 질문에 구체적인 답이 나오면 진짜 우위가 있는 것입니다. 답이 안 나오면 내가 못 본 정보가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4단계 — 사후 검증 주기를 캘린더에 넣습니다

지불한 값이 맞았는지 분기마다 확인합니다. 투자라면 후속 지표, 채용이라면 온보딩 6개월 후 성과, 광고라면 코호트별 회수 기간을 봅니다. 사후 검증이 없으면 같은 실수가 다음 분기에 반복됩니다. 사후 확신 편향 때문에 당시 판단을 미화하기 쉬우므로, 판단 시점의 근거 문서를 함께 열어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FAQ

승자의 저주는 모든 경쟁에서 발생하나요? 아닙니다. 대상의 가치가 참여자마다 다른 사적가치 경매에서는 잘 나타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취향에 따라 가치가 갈리는 수집품 거래가 그렇습니다. 반면 스타트업 지분, 광고 노출, 인재처럼 객관적 가치가 대체로 공통이면서 아무도 정확히 모르는 대상에서 뚜렷하게 나타납니다.
그러면 경쟁이 붙은 딜은 피해야 하나요? 피하라는 뜻이 아니라 할인해서 들어가라는 뜻입니다. 경쟁이 붙었다는 사실은 대상이 좋다는 신호이기도 합니다. 다만 경쟁자 수가 늘수록 낙찰가가 실제 가치를 넘길 확률이 함께 오르므로, 상한선을 미리 정하고 지키는 규율이 필요합니다.
창업자 입장에서 높은 밸류를 거절하는 게 합리적인가요? 상황에 따라 다릅니다. 조달 금액이 생존을 좌우하는 국면이라면 밸류보다 확보가 우선입니다. 다만 밸류가 높을수록 다음 라운드의 기준선이 올라간다는 점, 조건 조항이 붙으면 회수 시 보통주 몫이 줄어든다는 점은 계산에 넣어야 합니다. 밸류만 보고 텀시트를 비교하는 것이 가장 흔한 실수입니다.
광고 입찰에서 이 저주를 어떻게 확인하나요? 채널별·키워드별로 획득한 고객의 코호트를 따로 추적해 회수 기간을 계산하면 드러납니다. 전체 평균 CAC만 보면 가려집니다. 경쟁이 심한 키워드에서 들어온 고객군의 페이백이 유독 길다면 입찰가가 추정 가치를 넘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기존 의사결정 방식과 비교해 무엇이 달라지나요? 기존에는 대상의 가치를 추정하고 그 값에 맞춰 지불했습니다. 승자의 저주를 반영하면 여기에 한 단계가 추가됩니다. 내가 이겼다는 사실 자체가 담고 있는 정보를 가격에 미리 반영하는 것입니다. 판단의 재료가 하나 늘어나는 셈이라 의사결정의 질이 올라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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